2022 청룡영화제에서 6관왕을 차지한 영화, '헤어질 결심'을 좀 뒤늦게 봤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하나도 빠짐없이 본 사람으로써, 당연히 재밌을 줄은 알고 있었으나, 올해 여름은 좀 바쁜 시기였기 때문에 극장 갈 시기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결국 2022 청룡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쥐었고, 박찬욱 감독은 올해의 감독상, 박해일 배우는 남우주연상, 탕웨이 배우가 여우주연상, 그리고 정서경 작가는 각본상, 조영욱 감독이 음악상을 탔습니다. 연기부터 각본, 그리고 음악까지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수상을 확인한 뒤에야 뒤늦게 헤어질 결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감상은... 역시 그럴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1. 영화 개요

개봉 : 2022년 6월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멜로/로맨스, 드라마, 서스펜스

국가 : 대한민국

러닝타임 : 138분 

감독 : 박찬욱

출연 :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고경표, 김신영

 

소개 : 

산 정상에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2. 줄거리

해준(박해일)은 올곧은 캐릭터의 형사로 나옵니다. 대충 수사하는 법도 없는 유능한 형사입니다. 바위 정상에서 추락사한 시체를 조사하기 위해, 그 정상을 따라 올라가보는 장면에서부터 그 성격을 묘사합니다. 해준의 후배 수완(고경표)이 투덜거리는 장면에서 그 성격을 더 강조하죠.

사망한 남자의 배우자인 서래(탕웨이)는 전혀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준은 그녀를 용의선상에 올려 심문하고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는 것은 물론, 중국인이라 한국어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탓에 일상 대화에서 문어체를 사용합니다. 나중에 해준은 그것이 즐겨보는 사극에서 배운 말이라는 것을 깨닫는 장면도 나오는데요, 그런것 때문인지 서래의 분위기는 더 알 수 없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놀라지 않았다고해서 범인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범인임을 알기 위해서는 증거를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저 성격이 무덤덤할 뿐이라는 것과, 평소 남편에게 학대를 당했다는 것을 미루어보아, 해준은 그녀가 진짜 살인범이 아닐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수완은 그녀가 중국에서 자신의 엄마를 죽였던 사실까지 알아내며, 표적 수사할 것을 요청합니다. 여기서 해준은 자신만의 감각으로 서래가 범인이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아닐 거라 생각한걸까요 아니면 아니길 바랐던 걸까요?

 

해준은 서래를 관찰하면서 서래의 취향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스마트 워치에 그러한 것들을 모두 녹음을 합니다. 그리고 범죄자에 대한 관찰보다 한 여자에 대한 관찰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래 역시 그것을 모두 눈치챕니다. 그리고 역으로 다른 범인을 수색할 때 그 곳을 따라가 보기도 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형사, 그들의 대화 속에서 서래 역시 해준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그들은 형사와 용의자 관계보다는 인간대 인간의 관계로 사이를 발전시키기 시작합니다. 천천히 서로를 묻는 말들, 그리고 텔레비전 같은 곳에서 배운 상당한 문어체같은 대화들이 분위기를 더 묘하고, 또 아름답게 만듭니다. 함께 하며 서로에게 호감을 확인하게 됩니다. 해준은 이것이 외도임을 알면서도 이끌리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됩니다. 서래는 해준이 가진 트라우마와 같은 것을 듣고, 그를 편안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수사는 결국 서래에게 증거를 찾지 못한 채 마무리 짓는 상황이었습니다. 서래는 어느날 매주 월요일 방문해야하는 할머니 -서래의 평소 직업은 치매 노인 간병인으로 나옵니다-에게 가지 못한다고 했고, 해준은 서래 대신 그곳을 가줍니다. 이미 수사할 때에도 한번 만났던 노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해준은 서래가 남편을 죽였다는 단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서래는 그 할머니를 이용해 알리바이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서래와 똑같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던 할머니, 할머니의 휴대폰에는 '걸음수'가 체크되어있었습니다. 유일하게, 그날 월요일만요.

 

거기서부터 단서를 얻은 해준은 서래가 했을 방식을 그대로 재연해봅니다. 그렇게 서래의 살해 방법까지 모두 알게 됩니다.  그렇게 무너진 해준은 서래를 찾아갑니다. 자신은 그저 용의자에게 홀려, 수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범인을 눈앞에서 놓쳐버린 볼품없는 형사가 되어버렸습니다. 화를 내던 해준은 서래에게 휴대전화를 바닷속으로, 아무도 보이지 못하는 곳으로 던져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래에게 "난 붕괴됐어요."라고 말하고 떠납니다.

 

그렇게 해준과 서래는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래는 두번째 남편을 만났고, 그 남편과 해준이 사는 동네로 이사옵니다. 이후 두번째 남편 역시 살해당했고, 해준이 그것을 조사하게 됩니다. 해준은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서래가 범인임을 확신합니다. 이번엔 후배 연수(김신영)가 도저히 용의자로 볼 수 없다고 말하지만, 해준은 거의 확신에 차있습니다. 그리고 서래에게 살인의 이유와 알리바이를 묻습니다. 서래는 이번에도 자신이 남편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죽은 뒤 발견한 시체의 피는 닦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전에 해준이 말했던 트라우마를 고려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서래는 이렇게해서 해준을 만나 좋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두번째 남편을 죽인 것은 서래가 아니었습니다. 금전과 사업 문제로 악연이 있던 다른 남자의 짓이었죠. 그는 자수합니다. 그리고 시체를 닦아놓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 무섭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서래는 용의선에서 풀려납니다. 그리고 서래가 미처 버리지 못한 휴대폰과, 진실을 알게 됩니다. 두번째 남편은 서래가 진심으로 해준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볼모로 서래를 협박하고 있었습니다. 서래에겐 그리움으로 남겨놓은 해준의 음성이 있었고, 그 음성은 불륜의 증거였습니다. 그는 해준을 무너뜨리고자 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서래가 이 살인이 일어나도록 종용한 것이었습니다.

 

 

3. 감상

글로 요약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디테일이 좋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영상 방식이 참 신비롭고 좋습니다. 아름다운 영상과 미스터리한 전개 방식은 박찬욱 감독의 이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더할날위없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한국어가 서툰 중국인의 '문어체'대사는 이 분위기를 더 신비롭게 만들어줍니다. 

 

사건의 미스터리함을 풀어가는 방식이 매우 좋습니다. 정말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기가막히게 잘 사용한 오브젝트들은 하나 하나 매니악한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덕분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적 감각이나 대사들이 매니아층을 형성하게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바다 풍경이나 벽지 같은 것들, 그리고 담배, 곰파이, 눈알 같은 오브제들이 상징처럼 계속 쏟아져 나오니 마지막에도 여운이 남게 됩니다.

 

 

박찬욱 영화 속 여성 범죄자

박찬욱 감독이 그리는 영화 속 여성 범죄자 캐릭터는 저에게 항상 매력적입니다. 매력적인 여성 범죄자가 등장하는 영화로는 <친절한 금자씨>, <스토커> 정도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저의 최애 영화는 <박쥐>입니다. 

 

그런 의미로 박찬욱 영화 속 여성 범죄자들은 많은 사전 준비와 계획을 통해 치밀한 살인을 합니다. 피해자라서 어쩔수없이 살인했다 라는 어줍잖은 약자 포지션의 범죄자로 그리지도 않는게 좋습니다. 우선 살인이란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서 오는 사이코패스적인 범죄자의 얼굴을 디테일하게 그립니다. 무차별 살인 보다는 서사있는 살인을 저지르는 데에서, 그 치밀함이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영화를 불륜 영화, 혹은 로맨스 영화로 느끼진 못했습니다. 서스펜스, 스릴러 등의 장르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남자 주인공인 해준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용의자에게 묘한 매력에 이끌린 형사, 선을 지키지 못한 형사. 본인도 그것을 인정하지만, 서래에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매력있는 캐릭터가 아니긴 하죠. 항상 두려움이 있는 사람인 해준과 두려움이 없는 서래의 만남이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까지도 그 두려움 때문에 서래에게 화를 내고 떠난 해준, 서래는 서래의 방식으로 두번째 살인에서 매듭을 지어줍니다. 이제 범인을 잡고, 붕괴된 자신을 만들지 말라는 듯이. 너무 멋있는, 해준에게는 너무 과분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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